3.1운동 100년과 안성의 역사
-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역사
안성신문

 

▲조천호 시민


3.1운동 100년과 안성의 역사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역사>

3.1운동 100주년이다. 3.1운동은 왜 의미가 있는가? 오늘날 안성의 역사 속에서 왜 3.1운동이 의미가 있는가? 100년 전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삶과 역사가 어떠했으며 그것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우리의 삶과 역사가 우리 후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와 연결짓지 못한 과거의 역사는 죽은 역사이며 현재와 연결짓지 못한 미래의 역사도 죽은 역사이다. 현재의 역사가 과거와 연결되어야만 살아있는 과거의 역사가 되듯 현재의 역사가 미래와 연결되어야만 살아있는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조상 3대가 덕을 쌓아야 후손들이 그 덕을 본다”는 말이 있다. 3대로 치면 대략 100년이다. 대부분의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그 부모는 또한 그 부모를 닮는다. 최소한 부모가 목숨을 걸고 살아왔던 삶을 자식들은 이어갈려고 노력할지언정 그 부모의 올곧은 길을 반역하여 살아가려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면에서 3.1운동 당시 전국 3대 무력항쟁지 중 하나였던 안성 지역에서 우리 조상들이 무슨 일을 했으며 현재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위대한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이자 문인이었던 단재 신채호가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아(我)와 非我(비아)의 투쟁의 역사”라고 말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안성의 역사도 아와 비아의 투쟁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안성 3.1운동의 경우에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기 우리에겐 세상 천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부모의 부모들’이 계셨다.

100년 전 3,1만세운동 당시,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인 할머니의 삶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나(我)”가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이 역사의 중심이자 우리의 “我(아)”인 반면 일본제국주의자와 일제에 부역하였던 친일파들은 “非我(비아)”인 것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분들은 친근한 이웃집 아주머니 아저씨 형과 누나의 이름이다. 다시 지금 현재 호명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 분들의 이름은 비록 유명하지 않더라도 올곧은 삶을 안성 땅에서 살아왔기에 그것으로서 충분하다.

그래서 더 가치가 있고 의미가 깊다. 얼마나 만세운동과 무력항쟁이 두려웠으면 일제는 혹독하고 악랄하게 탄압을 하였을까? 안성 3.1운동 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3월 11일부터 4월 3일까지 약 6천명 이상의 규모로 전지역에서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일제에 의해 참여자 800여명의 체포, 276채의 방화, 26명이 죽임을 당하고 177명이 옥중에 갇힌다.

26명의 순국열사와 177명의 항일독립운동가. 어찌 그들뿐이랴, 6000여명 이상의 다수 안성 민중들이 들고 일어난 3.1운동인 것을, 그들 모두가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안성의 안중근·유관순”인 것을.

 
우리 조상들이 목숨 걸고 싸웠던 3.1운동과 항일독립운동, 현재 우리는 우리 자식과 후손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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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23 [10:57]  최종편집: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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