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김정호의 『청구도』와 양성 안성 죽산의 고지도 2
김한영

<도판 1>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 중 양성 안성 죽산 일대.      © 안성신문

 
지난호에 이어서 이번에도 김정호의 고지도를 대상으로 하여 안성의 옛 모습을 더듬어보기로 하자.
 
<도판 1>에 보이는 『청구도』는 접철(摺綴)의 형태로 조선팔도를 모두 포괄한 대형지도이지만 양성현 안성군 죽산부가 하나로 통합되어 탄생된 지금의 안성 지역만을 놓고 보면 비례나 윤곽이 30여 년 후에 세상의 빛을 본 『대동여지도』(<도판 2>)보다 더 정확함을 어렵지 않게 헤아릴 수 있다. 지명 표기도 한층 더 소상하여 당시 안성 지역에 속한 거의 모든 방면들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아마도 칼로 목판을 새겨서 형태와 글자를 나타내야 하는 목판본과 달리, 세밀하고 용이하게 부분을 표현할 수 있는 필사본이기 때문에 이러한 세부사항들의 표현이 가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  <도판 2> 『청구도』(필사본) 이후 30여년이 지난 후 제작된 『대동여지도』 목판본의 양성 안성 죽산 일대.    © 안성신문

 
김정호가 제작한 다른 지도들 가운데 마찬가지로 『대동여지도』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 『동여도』 역시  『청구도』에 못지않은 정치(精緻)한 부분 묘사와 상세한 지명 정보가 수록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제작상의 어려움 때문에 수많은 보정(補正)을 통해 제작되어 우리나라 최고의 고지도로 꼽히는 『대동여지도』에서 상세한 내용을 수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은 설득력이 있다 할 것이다. 
 
일단 지도에 보이는 양성 안성 죽산에 속했던 각 방면(坊面)들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줄여서 쓸 때 '면'이라고도 하는 '방면'은 가장 작은 단위의 자연취락인 방리(坊里)와 함께 전통사회에서 기초행정단위 역할을 수행했던 촌락들의 묶음을 일컫는 말이다. 집성(集姓)에 기초하고 고유한 문화공동체를 유지한 기초단위였던 면(面)은, 오늘날과 같이 적게는 10여 개에서 많게는 30개 이상의 법정리(法定里)를 포괄하는 면과는 사뭇 그 성격과 규모가 다른 것이었다. 대개의 경우 인적으로나 거리적으로 생활권이 인접한 10개 안팎에 이르는 방면들이 '향당'(鄕黨)이라고도 하는 고을[邑]을 이루었는데, 지도에 보이는 양성현 안성군 죽산부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 방면 체제는 근대적 행정의 효율적 운용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1914년 일제는 이를 통폐합하여 대대적으로 광역화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는데, 이를 통해 서너 개의 방면이 하나의 면으로 통합되어 근대적 면 체제가 확립되었다.
 
지도에 표시된 방면들을 살피면, 양성현에 속한 것들로 승양면(升陽面) 지동면(紙洞面) 금동면(金洞面) 송오면(松五面) 덕산면(德山面) 원당면(元堂面) 반곡면(盤谷面) 소고니면(所古尼面) 공제면(孔悌面) 구룡면(九龍面) 영통면(令通面) 도일면(道一面)이 보인다. 이들 방면들이 양성면 공도면 원곡면으로 통폐합되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1914년의 일이다. 
 
안성군의 경우*, 이 지도에 표시된 방면들은 율촌면(栗村面) 견천면(見川面) 금곡면(金谷面) 죽촌면(竹村面) 소만면(蘇万面) 말토면(末土面) 잉산면(芿山面) 방지곡면(方只谷面) 송죽면(松竹面) 덕곡면(德谷面) 오신면(五信面)** 가지동면(加之洞面) 거호동면(居乎洞面) 기좌면(其佐面) 가사면(加士面)으로 총 15개에 이른다. 이것들 역시 1914년에 읍내면(현재의 안성1·2·3동이 이에 해당) 보개면 대덕면 서운면 금광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죽산부에는 원일면(遠一面) 근삼면(近三面) 원삼면(遠三面) 서삼면(西三面) 서일면(西一面) 서이면(西二面) 산내면(山內面) 남일면(南一面) 남면(南面) 도일면(道一面) 천북이면(川北二面)이 표시되어 있다. 방면의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과거 죽산은 고을의 위격이나 면적으로 볼 때 매우 큰 지역을 이루었다. 그러나 1914년을 기해 상당한 땅이 용인으로 귀속되고 앞서 열거한 방면들 가운데 서삼면 서일면 서이면 산내면 도일면 등을 통폐합하여 오늘날과 같은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으로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도판 1>에서 흰선으로 표시한 부분은 전통적으로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양지면) 소속이었으나, 1963년 들어 안성으로 편입된 고삼면 지역이다. 당시에는 고동면(古東面) 고서면(古西面) 고북면(古北面)이 보산(지금의 보개산)과 대·소곡돈현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도에서 특기할 점은 안성군의 서남에 황색 사각형 표시 부분(현재의 미양면 고지리 개정리 서쪽, 과거 이곳을 '소사평'이라 불렀다)의 양성현과 접한 지역에 "解生破倭兵"(해생파왜병)이라고 표기하여 정유재란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홍경원(弘慶院)***이 들어서 있었고 직산과 성환역, 안성과 양성이 접한 이 지역은 시대를 달리하여 여러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 망이 망소이가 봉기했을 때도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청일전쟁 때는 북상하는 청군과 남하한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빚어진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에서 가장 큰 규모로 전투가 발발한 것은 1597년 9월 초순의 일로, 이를 통해 정유재란의 흐름이 결정적으로 뒤바뀌기에 이르렀다. 권율과 이시언(李時言)이 지휘하는 조선군과 명(明)의 부총병(副摠兵) 해생(解生)이 지휘하는 명군이 연합을 이루어 이곳에서 한양을 향해 북상하는 일본 우군 소속 가토(加藤淸正)와 구로다(黑田長政)의 군대를 대파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이 수로를 통해 한양에 이르는 길을 틀어쥔 까닭에 바다에서 연이어 패퇴한 데다가, 수만에 달하는 군대가 이곳 안성 땅에서 6차례 맞붙은 후 6번 모두 패배한 일본은 사실상 전쟁을 더 수행할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그런 탓에 명나라에서는 이 전투를 임진왜란 육전(陸戰) 중 3대첩의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지도제작자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옛 격전지였던 이곳에 "파 왜병"이라는 문구를 새겨넣은 것이다.   
 
▲  <도판 3> 흰 선은 오늘날 아산만 인근의 화성과 평택 땅으로 19세기 이전 전통적으로 양성현의 월경지(越境地)였던 지역을 표시한 것이다. 도판에 보이는 지도는 『청구도』의 제17층 14판을 중심으로 15판과 13판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 안성신문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할 때, 고지도들이 단순히 땅의 이치, 곧 지리(地理)에 대한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느 문자기록에 못지 않게 생생한 역사의 숨결을 전해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헤아릴 수 있다. 지리인식이나 공간개념이 오늘날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지만, 서양의 과학적인 근대 측량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의 전통적인 지도 제작방식으로 제작한 김정호의 『청구도』 역시 그러한 사실을 실례로 말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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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는 조선초기부터 지지(地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북좌면(北佐面)이 누락되었다. 북좌면은 오늘날 보개면 북좌리 신안리 오두리 보평리에 해당한다.

** 대부분의 다른 지도들이나 문헌들에는 고개를 의미하는 '오신치'(五信峙)로 나타나 있으나, 여기에서는 이를 방면으로 표시하였다. 현재의 금광면 상중리 한운리 일대에 해당한다.

*** 지금은 사라진 홍경원은 역원(驛院)과 도량(道場) 역할을 동시에 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유구한 유적이다. 현행 행정구역으로는 천안의 성환에 속하고 국보 7호인 봉선홍경사사적갈비(奉先弘慶寺事蹟碣碑)가 소재한 홍경원 터는 과거의 지지 문헌들이 하나같이 안성(양성)의 고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 「안성 … 100년」이나 「안성근대인물열전」과 마찬가지로 이 연재 또한 당분간 중단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함에 맞닥뜨렸으니 이 점 독자제현께 정중히 양해를 구한다. 그 연유의 일단을 에두르게나마 「안성… 100년」의 이번 연재 원고에서 피력한 바 있으니, 여기서 거듭 그 심경을 구구하게 피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김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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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27 [15:33]  최종편집: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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