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그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정규


우리는 항상 한 장의 그림을 대할 때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를 평가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어른들 또는 기성작가들의 그림뿐 아니라 아이들의 그림을 평가할 때도 이러한 판단기준을 들이댄다.
 
그렇다면 잘 그린 그림이란 무엇일까? 특히 아이들의 그림에서 잘 그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사실적인 형태의 표현, 꼼꼼하게 칠한 여백, 굵고 자신 있어 보이는 윤곽선, 대담하면서도 조화로운 듯 보이는 색상과 구도! 과연 이런 것들이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될까? 오히려 이런 기준들이 아이가 놀이의 한 수단으로 그림을 그리는 좋은 경험을 왜곡되게 하지는 않을까?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선 우선 필자의 경험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필자는 오랫동안 입시미술을 지도해왔던 터라 항상 사실적으로 그리는 기술적인 측면만을 지도해왔다. 그런 영향인지는 몰라도 아이의 그림을 대할 때도 늘 실제적 표현을 잘했는가, 못했는가 하는 기준으로 그림을 보아왔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아이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평가하는 것 또한 그리 어렵지 않다.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과 관찰한 결과를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는가 아닌가의 잣대로 재능의 유무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은 간단하다. 나는 이러한 태도가 오직 한쪽 면만을 바라본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사실묘사에만 치중했던 경험의 산물이 아닐까? 

하나의 기준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것은 그와 다른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일방성의 모습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미술 속에서 그동안 나는 한쪽 세계만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잘 관찰하고 잘 그리는 것을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가지는 장점과 나름의 깊이가 있다. 나는 다만 한쪽 면밖에 보지 못했던 편협한 시각의 한계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들이 아이들 그림을 이런 사실표현을 기준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묘사는 어른들에게도 힘든 일이다. 우선 사실묘사를 잘하려면 자세히 관찰해야 하고 꼼꼼해야 하며, 끈기 있고 성실해야 한다.
 
게다가 부단한 노력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드러나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런 다음에야 "어쭈∼ 제법 그리는데∼!"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쯤 되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기술을 연마하는 도구로서의 미술이 된다. 결국 미술 공부(?)가 되어버린다. 아이가 이것을 견딜 수 있을까?

미술은 사실을 재현하는 방식도 있고, 마음 즉 심상을 표현하는 방식도 있다. 사실을 재현하는 방식과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엔 차이가 있다. 물론 마음의 표현을 사실에 근거해 표현하기도 한다.
 
전자가 객관적 방식이라면 후자는 주관적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객관적 방식은 개성은 덜 드러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후자는 누구나 공감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나름의 독특한 호소력을 지닌다. 또 객관적 방식이 이성적이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주관적 방식은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개인의 경험과 경향성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의 그림은 주로 주관적 방식에 가깝고 직관적이다.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리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마음을 표현하는 데 무슨 관찰이 필요하겠는가? 보지 않아도 아이의 마음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아이에게 사실묘사는 관심 밖이다.
 
그러니 사물을 관찰할 필요도 없다. 아이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데 바쁘다. 그리는 시간도 길지 않고 심사숙고해 보이지도 않는다. 아이에게 그림은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대충 흘려 그리면 대충 그리는 의미가 있고, 굵고 강하게, 그리고 꼼꼼히 그리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뿐이다. 거기엔 잘하고 못하는 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림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공감해야 하는 이해와 공존의 세계이다. 우리가 아이의 세계로 몸을 낮출 때 비로소 아이는 비밀의 문을 연다. 그러면 그림에서 그동안 잃고 있었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미술은 아이에게 시각적으로 자신의 느낌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재인식의 장(場)이며, 또 어떤 방식으로든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발견하는 장이기도 하다.
 
창조하는 자아를 실현함으로 자존감을 드높이는 자리이며 '성취하는 자아'를 만나고 경험하는 장이다.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아이의 모습엔 공감과 지지를 먹고 자라는 아이의 꿈이 있다. 자, 이제부터 기술적 판단을 뒤로 미루고 경이로운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그림 속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한정규 시민기자(동화속 미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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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0/16 [14:51]  최종편집: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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