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분이 할머니
정요섭

날씨가 차가워지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어림잡아도 스물여덟 해가 지난 일인 데도 나이가 들수록 더 선명한 화면으로 떠오르는 기억입니다.
 
무심한 도시의 하루가 사위어가는 시각에 빈 동냥그릇 앞에 두고 꾸벅 졸고 계신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초췌한 모습을 봐서는 종일 음식구경도 못하신 것 같았습니다. 사람 뜸한 지하철계단 찬 바닥을 접은 종이상자 하나에 의지하고 졸고 계신 할아버지. 그 움푹한 눈이 마음에 걸려 아직 문 닫지 않은 모퉁이 가게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병우유와 카스테라 한 봉지를 사드렸습니다.
 
▲     © 안성신문

 
"할아버지, 만약에 빈속이시면 천천히 드셔야 해요." 할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없으셨습니다. 제가 있는 게 불편하신 것 같아서 눈인사만 드리고 저만치 가다가는 '차도 끊겼는데 어떻게 돌아가실까' 염려되기도 하고, 어디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몸이라도 녹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다시 할아버지께로 가다가 눈앞에 펼쳐진 의외의 장면 때문에 멈칫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할아버지보다 더 남루한 차림의 어느 할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그 할아버지께 차려 드리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또 얼마나 맛있게 드시고 계신지…….
 
찬바람 사나운 밤에 제가 본 두 분의 모습은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호기심도 일고해서 스치듯 슬쩍 바라보니 밥 한 그릇을 더운물에 말아서 단무지를 반찬으로 드시고 계셨는데, 아하! 할머니가 할아버지 식사를 챙기고 계시구나 싶었지요. 순식간에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는 제가 사드린 우유와 빵을 할머니께 드리는 듯했지만 할머니는 끝내 받지 않으시고 자리를 뜨셨지요. 이것저것 돌아가실 채비를 하시는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저만치 걷고 계신 할머니의 잔뜩 구부러진 허리가 눈에 차왔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때까지 거기 계시던 할아버지. 어디에 사시는지 몰라도 차도 끊긴 시각에서야 식사를 챙겨드리고는 더딘 걸음으로 바람 찬 길 바삐 나서시는 할머니. 밤공기 냉랭한 거리에서 불과 십여 분 사이에 제가 본 일들은 그냥 비켜보면 아무 일 아닐 수 있을 테지만 마음 써서 보면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어느덧 할머니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지팡이도 없이 꼬부랑 걷는 할머니가 힘겨워 보였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남대문으로 해서 서울역 건너 따복따복 낮은 집들이 엉겨 붙은 동네까지 걸어가셨습니다. 아마 지금은 헐려서 없어진 양동 어디였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들어가신 후에도 그 집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았고 한참을 기다려도 아까 본 할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김분이 할머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다가올 봄을 설레며 기다리던 바람차던 그 밤이었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만날 요량으로 다음날도 할아버지가 계시던 종각거리로 나가보았습니다. 어김없이 할아버지는 나와 계셨고 할머니는 전날보다 이른 시각에 할아버지 식사를 챙겨드리고 떠났습니다. 그날은 커다란 물통이며 종이상자까지 실은 손수레를 끌고 계셔서 집까지는 가시려면 제법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짧은 신호에 비해 도로 폭이 넓은 어느 건널목에서 반절도 못간 걸음을 부축하며 할머니께 말을 건넸습니다. "할머니, 저 어제도 할머니 집까지 따라갔었어요." 흠칫 놀라시는 할머니는 대꾸도 없으시다가 길을 다 건넌 후에야 그게 무슨 얘기냐고 물으셨습니다. 답이 궁해 더듬거리는 제게 할머니는 "배고프냐"고 물으시더니 "집에 가서 밥이라도 먹고 가라" 하셨지요. 할머니 보시기에는 제가 배고파 보였던가 봅니다. 할머니 집으로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주로 할머니께서 물으시고 제가 대답하는 식의 대화였지요. 동네로 올라가는 골목에서 할머니는 꽤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거개가 '오늘은 일찍 오신다'는 인사를 건넸고, 할머니는 "날씨 춥자?, 저녁밥은 묵었는가?" 하고 되묻곤 하셨지요.
 
▲     © 안성신문

할머니 집은 바깥에서 본대로 누추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방바닥은 냉골로 지낸 지 오래인 듯 했고 살림이라고는 옷을 담은 종이상자만 몇 개 쌓여 있었습니다. "원래 물을 끓여야 허기 땀시 연탄을 피웠는디, 저번 겨울게 연탄가스 땜시로 나가 죽다 살아났어, 요사는 시장 복씨네가 때마다 물을 끓여줘서 아예 연탄을 내쏴부렸어" 하시며 제가 추울까 걱정하셨습니다.
 
납짝보리쌀 푹 삶은 밥을 더운물에 말아서 단무지랑 먹는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다음 할머니께 여기서 주무시냐 여쭸더니 대뜸 "처먹여줬더니 재워달라고?" 하시며, "내가 너 겉은 젊은 놈을 뭘 믿고 재워 이놈아, 빨리 가!" 할머니의 역정이 대단하셨지요. 추운 방에서 주무실 할머니가 걱정돼서 그냥 여쭌 말인데 눈치 빠른 할머니는 나도 모르는 내 속내를 아셨는지 아예 딱 잘라 거절하시는 거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깊어지고 시간도 많이 흐르자 결국 할머니는 못이기는 듯 자고 가라 하셨고 이불 대신 꺼내주시는 옷가지를 보고서야 할머니가 왜 사람들이기를 꺼려 하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찬 겨울을 냉방에서 이불도 없이 사시는 할머니의 사연은 밤 깊어 "찹사알∼떡!", "메미일∼묵!" 소리가 꿈결처럼 아슴히 들릴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전쟁통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하나뿐이던 아들도 굶어죽었으며 그 뒤 착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 재가도 해봤지만 일 못한다고 소박맞고. 세상 어디 정 둘 곳 없어서 끼니 굶는 노숙인들 밥을 챙겨주고 있는데 그것마저 시장에 버려진 종이상자를 주어다 판 돈으로 해결하는 터라 배곯는 사람은 엄청 많은데 그 사람들 하나라도 더 챙기려면 전기는커녕 연탄 하나라도 아껴 쓸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듣고서야 전날 종각서 본 할아버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 수 있었지요.
 
"너 혹시 데모하는 놈이냐?", "사람이 말이여 뭐가 젤로 서러운지 아냐?", "뭐니 혀도 그것은 배 곪는 거여, 배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다고들 허잖여?", "너도 밥 잘 챙겨먹고 다녀라, 속빙 생겨서 니 부모 속썩이지 말고", "전기세 먹는다, 그만 자자." 할머니는 날이 벗자마자 곧장 일어나셔서 끓인 물 받으러 가신다고 집 나설 채비를 하셨습니다. 할머니를 따라나선 서울의 거리는 다시 사람으로 복작거렸습니다.
 
그후 저는 틈나는 대로 할머니 일을 거들게 되었고 할머니도 저를 마치 친자식 대하듯 좋아하셨습니다. 결국 제가 붙들린 것도 할머니와 함께 노숙인들 밥을 돌릴 때였고, 친 가족이 아니라고 면회를 못하시고 돌아가시면서 할머니는 "어린 자식 묻으면서 한번 울어보고는 처음 우셨노라"고 받침 틀린 글씨로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얼마를 지나 제가 바깥세상 밟은 날, 친구랑 찾아간 할머니 집에는 이미 낯선 사람이 살고 있었고, 물 끓여주시던 남대문 상인부부께 전해들은 말은, 할머니는 아주 평화롭게 돌아가셨고 몇몇 사람들이 화장을 해서 할머니의 고향인 군산 만경뻘에다 재를 뿌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그렇게 전하라 하셨답니다. "아주 속 핑케 간다고……."
 
밤공기가 차가운데 홀로선 나무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보면 아낌없이 주시던 할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정요섭(양성면 방축리 생태공동체 '희망나무' 대표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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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0/16 [17:38]  최종편집: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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