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너의 마음이 궁금해
김정연
안성신문


입추가 지나자 언제 그렇게 더웠냐는 듯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너무나 간사하여 한 여름의 폭염을 잊어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누구나 느끼는 마음일 터, 사람들은 변화되는 환경에 잘도 적응하며 살아간다.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그렇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생활한 것이 언제인가 싶다. 처음 마스크를 쓰고 생활했을 때 그 불편함이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피부가 민감한 나는 마스크가 닿는 부분이 가려웠고, 마스크를 쓰고는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내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참으로 이상한 건 피부조차 마스크에 적응하여 이젠 가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코로나가 물러가서 마스크를 벗게 된다면 맨 얼굴로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코로나 이전처럼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단연 어린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꼭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어도 외부활동을 통해 누려야 할 행복을 미세먼지다 공부다 해서 빼앗긴 존재들이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홀로 원격수업을 받고 있으니 외부 활동은 더욱 더 어렵게 되었다. 놀이터를 빼앗긴 아이들은 실내에서 행하는 놀이로 만족해야한다. 그 다음은 삶에 찌든 어른들이다.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동료들과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던 어른들. 그 시간을 빼앗긴 어른들은 지금 어디에서 자신의 노고를 달래고 있을까. 다행으로 가정에서 해결된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힘든 영혼들을 달래줄 사회적 시스템이 우리에겐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은 어떻게 이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을까? 정말 궁금하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너무 오래는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 또한 이러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요즘 고초를 겪고 있다. 나름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이 자유롭고 즐거운 수업 분위기속에서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교육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까닭이다. 나의 이러한 교육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이들과의 소통은 필수 요소다. 소통을 위해서 아이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순한 욕망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잘 헤아려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것을 힘들게 한다. 마스크를 쓴 아이들의 내면을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봄 부터 공부방을 열고 신입생을 받아들인 나는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린 아이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했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어른들과 달리 마스크 때문에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환경에 적응을 잘 하게 되는 것이 어른보다는 유리했던 탓일까, 어른들에 비해 마스크를 아이들은 그리 불편해하지 않는 듯 했다. 그런 아이들을 대하는 내가 문제였다. 도통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었다. 공부방 운영 목표를 행복하게 하는 공부라 생각하는 나로서는 커다란 난관에 부딪힌 것이었다. 마스크를 쓴 아이들은 표정이 없었다. 과제가 어려운지, 숙제의 양이 많은지, 현재 소화해야하는 학습량이 적당한지, 쉽게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 모두 다르기에 개인이 소화할 수 있는 학습량을 적절히 조절해 주어야 하는 것이 교사로서 가져야 할 나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실행하기에 가장 중요한 과정이 바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인데, 이놈의 마스크가 그것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어느 날, 5학년 아이가 수업을 마친 후 지친 목소리로 힘들다며 내게 하소연했다. 내가 주문한 학습량을 겨우 소화하고 오답 정정까지 한 후 아이는 수학, 정말 싫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처음 아이를 만났을 때, 그 아이의 학습 수준을 기억해내고는 지금은 실력이 꽤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던 중이었다. 나는 고심 끝에 투명 칸막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부탁했다.

마스크를 잠깐만 내리고 얼굴 좀 보여줄래?”

그러자 아이가 주춤하더니 아주 짧은 순간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내렸다. 마스크를 벗은 아이의 얼굴이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힘든 수학문제를 푸느라 지친 얼굴이 아니라 그만큼 어려운 것을 해냈다는 만족감에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곧 안도했다.

, 너무 잘하지 말라고 했지! 누가 이렇게 잘 하라고 했어?”

나는 조금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말하며 한 손을 높이 올렸다. 아이와 나는 손바닥을 마주 쳤고 눈을 맞춘 채 활짝 웃었다. 아이의 마음을 확인한 나는 그 후 마스크 뒤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과감하게 그 아이에게 조금은 과하다 싶은 과제를 내주었다. 아이는 너무 많다고 울먹거리면서도 끝내 다 해결하고 내게 온다. 과제 검사를 마친 후에 아이의 눈동자를 보면 점점 더 빛나고 있었다.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성인들이야말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이 세상 모든 고난을 다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사람을 갖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고충을 나눈다. 마스크를 쓰고라도 저녁 시간 그윽한 불빛 아래서 고기를 구우며, 그윽한 연기 속에 자신의 수고를 날려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런 시간을 코로나 바이러스에 빼앗긴 우리는 참으로 안쓰럽다. 더욱 용기낼 수 있게, 더욱 잘 할 수 있게 우리를 모두가 함께 북돋울 수 있는 시간, 그 마법의 시간들을 우리는 잊어가고 있다.

 온 가족이 모여 돼지갈비를 구워 배가 터지게 밥을 먹고, 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건배사를 외치며 하루를 축복하는 풍요로운 저녁이 그립다. 힘든 일상에 지친 동료의 눈 아래 다크써클을 보고 싶고, 억울한 하루를 견디고 와 잔을 든 동료의 붉은 눈시울을 어루만지고 싶다. 또 잘 살고 있다고, 그만하면 잘 했다며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꼰대 선배의 느끼한 눈빛도 이제는 보고 싶다. 삶의 모든 순간이 소중한 것을 이제는 알겠다. 모든 세대가 어울려 함께 가는 것이 이 세상이라는 걸, 지금은 알겠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곧 물러갈 것이다. 또 그에 버금가는 무언가가 우리를 위협할 지라도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러니 잊지는 말자, 지금 힘든 시간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는 너의 마음이 궁금하다는 것을. 마스크 뒤에 가려진 너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우리는 그래서 우리가 된다는 것을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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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9/03 [14:56]  최종편집: ⓒ 안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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