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거지 계의 살아 있는 전설, 세근이 할아버지
“모든 사람이 하느님같이 우러름을 받는 세상”
송상호 기자

“안성의 살아 있는 전설” “안성의 거지 계를 평정한 안성의 역사” “안성토박이라면 누구에게 물어봐도 알고 있는 사람” “얻어는 먹어도 절대 훔쳐 먹지는 않는 철칙의 소유자” “인사성도 밝고 남에게 절대 피해는 안 주는 사람”…
 

이상이 세근이(68) 할아버지에 대한 안성 사람들의 평가이다. 사람들이 하도 그래서 기자도 어떤 분인가 만나보고 싶었다. 만나기가 힘든 분이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차에 지난 4월 6일 안성시장에 있는 한 치킨 집 앞에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고 부리나케 출동했다.
▲안성시장 내에 있는 한 노점상 꽃가게 앞에서 폼을 한껏 잡으신 세근이 할아버지(68세).     ©안성신문

드디어 그와의 첫 대면이다. 예상대로 남루한 옷을 입은 채로 가게 앞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보자마자 반가워서 악수를 청했다. 그랬더니 그는 더욱 반갑다고 악수를 해온다. 역시 수많은 세월을 사람 대하면서도 사랑(?)받은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직업은 물론 ‘걸인’이다. 소위 ‘거지’다. (여기서 잠깐. 걸인이 직업이냐고. 물론 그렇다. 당장 사전이나 인터넷에 ‘직업’이라고 검색해보라. 먹고살기 위해 계속하는 일이 직업이라고 되어 있을 거다. 우리는 계속해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귀천을 따지는가.) 그는 자그마치 55년 된 베테랑 경력자이다.

“6․25 전쟁 전후해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어요. 고향 서울에서 안성으로 피난 내려와 살다가 살 길이 막막해 구걸을 시작했지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재미있어유.”

그는 자신의 나이를 68세라고 소개한다. 그렇다면 그는 1937년도에 출생한 셈이다. 일제시대 말엽에 태어나 9세(초등학교 2학년 나이) 때 광복을 맞이했고, 14세(중학교 1학년 나이) 때 6․25 전쟁을 맞이한 것이다. 그 와중에 부모님 두 분을 여의고 서울에서 안성으로 와서 계속 걸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진술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그의 인생이 마치 우리 민족의 얼룩지고 파란만장했던 현대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처음에 주위 사람들의 정보에 따라 그가 걸인인 데다가 약간 모자란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말의 신빙성을 테스트해보았다. 그런데 기자인 나보다도 더 정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기자가 가끔씩 조금 전에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해 엉뚱하게 말하면 “그게 아니고 이거다”라고 정확하게 짚어주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글씨를 써서 읽어보라고 권했다. 속으로 ‘아마 글씨는 잘 모를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곧 기자의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 거였는지 들통났다. 그는 글씨도 알고 있었다. “국민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못 다녔어요. 그래서 글씨를 조금 알지유”라고 일러주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악취가 난다고 했다. 기자의 코도 막힌 코는 아니라 냄새가 심하게 났지만 인터뷰해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바로 옆에 붙어 앉아서 다정하게 대화를 했다.
 
“목욕은 1년에 2~3회 정도 하는 편이구만요. 주로 여름에 하는 편이지유.” 그의 대답은 편안했다. 그럴 것이다. 노다지 바깥에서 생활하니 날씨가 쌀쌀한 날에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내는 게 당연할 터. 지금은 공중목욕탕도 냄새 때문에 출입금지일 테니. 그래도 왠지 그가 정겹게 느껴진다.
 
그는 처음 본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웃어주었고 소문(?)과는 달리 총명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우리들은 사실 몸에 냄새가 날까봐 목욕, 세수, 세발과 함께 향수 등을 뿌리고 다닌다. 그러나 실상 우리들의 인격에 악취가 나서 이웃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신경한가. 이런 생각들이 기자의 뇌리에서 뜬금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구걸하면서 가본 곳은 다양했다. 원주, 부산, 서울, 경기도 광주, 여주 , 평택 등등. 그는 주로 시골 장을 따라다닌다고 했다. 시골 장에 먹을 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 그랬으리라. 무엇보다도 시골 장터의 인정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아는 그의 살아 있는 노하우에서 나온 것일 게다. 요즘 거처하는 곳은 평택 역전 옆의 조그마한 여인숙이란다. 그래도 역전이 손쉬운 것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화장실도 있어서 그러하리라. 그런데 여인숙에 하루에 8천 원씩 주면서 생활한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하루 8천 원이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닌데. 그래도 재주가 용하시다. 앞의 테스트 결과(?)로 봐서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 거 같지는 않고.

구걸하면서 힘든 게 없었느냐는 질문에 당장 “없었시유”라고 대답하는 그. “어디에서 구걸 할 때가 제일 힘들었느냐? 어떤 사람이 힘들게 하더냐?”는 질문에도 “다 좋아요. 허허허허허허”라고 웃으면서 대답하는 그. 더 이상 인터뷰는 진행되기가 힘들었다. 다 좋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찌 어려운 일이 없었겠는가. 추위에 얼어 죽을 뻔한 경험이 몇 번이었겠으며 무시당하고 모욕을 당한 경험은 수도 없었을 것이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한 경험은 또 얼마였겠는가. 그런데도 그의 입에선 “다 좋아요. 모두가 좋아요”라고 한다. 거짓을 말함이 아닐진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여우도 집이 있고 참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던 예수나, 그 좋은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평생을 떠돌며 수행했던 석가모니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그런 기운을 본 것은 기자의 지나친 해석일까. 마치 방랑시인 김삿갓이 떠돌며 세상을 통달한 사람처럼 웃고 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진 촬영을 청했을 때도 그는 너무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응해주었다. (사진에서 확인해보시라.) 그리고 마지막 악수를 청했을 때도 그는 웃으면서 몇 번이고 악수를 해주었다. 뒤돌아가는 기자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실 기자가 고마운 건데 말이다.
 
 
돌아오면서 음성 꽃동네의 비석에 씌어진 글귀가 내내 머리에 떠올랐다. “한 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같이 우러름을 받는 세상.” 

송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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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4/19 [12:31]  최종편집: ⓒ 안성신문
 
돌멩이 05/04/25 [16:43] 수정 삭제  
  버스터미널에서 가끔 뵈었는데, 오랜만에 그리운 얼굴을 담으셨네요.
안성신문은 어쩜 이렇게 톡톡 튀는 취재거리를 잡으실까?
안성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일명 세근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대부분 그를 추억하게 되지요.
요즘 돌아다니는 거지하고는 좀 다른 사람이지요.
만나기도 힘들었을 텐데,, 여튼 안성신문 대단하십니다요.
어렸을 땐 무서워서 피해다녔는데,,, 사진으로 보니 여느 시골 할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갖고 계시네요.
세근이 할아버지 건강하시고요, 안성신문도 계속 파이팅!!
나드리 09/03/07 [09:42] 수정 삭제  
  쎄근이성님이 아직도 건강하시군요 . 반갑습니다. 그저 오래나 사시요 .안성에명물 ....쎄근형 !
뎅구르 19/06/28 [09:16] 수정 삭제  
  돌아가셨는줄 알았는데 아직 건강해보이시긴 합니다만 , 저분은 생계가 힘든 상황이고.. 이젠 연세까지 있으셔서 위태로와 보이기 까지 하는데 이런 기사보다도 마지막에 시청이나 지역 복지협의체에 연계를 해서 양로원이나 남은여생을 복지혜택을 좀 받으면서 사시게 인도하는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었다면 더 좋겠네요. 가족이 있었다면 저렇게 방치되지 않았을텐데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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